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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

한국불교의 큰 별 교조 청담 순호대종사

교조 청담 순호대종사 사진

 

우리 청담고등학교는 1970년대 초 호국참회기도도량 도선사 주지이셨던 진불장 혜성 대종사께서 교육 불사의 대원을 세워 평생 모은 시주금과 도선사 사부대중들의 불사금을 모아 설립된 대작불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교조이신 청담대종사의 유지를 계승한 것이다. 청담대종사는 한국불교 조계종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헌신하셨으며, 검소한 생활과 투철한 수행으로 후학들의 귀감이 되신 분이다.

생애와 사상

청담대종사께서는 한국불교 1700년 역사를 통해서 근대 고승들 가운데 빛나는 별과 같은 분이셨다. 청담대종사계서는 평생을 정진과 지혜로 깨달음의 길을 걸으시고 자비와 인욕행으로 중생제도를 몸소 실천하신 이 시대의 스승이셨다.

청담대종사께서는 1902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시어 소년시절에 3.1 만세 운동에 참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진주 고등농림학교 재학 중에 학우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주도하셨다.

1926년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 입산 후 1929년 박한영 스님 아래 개운사 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마치고 만공대선사 문하에서 수도정진 하시여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

1941년 봄 서울 선학원에서 고승법회를 주선하시어 민족불교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시고, 1954년 8월 4일에 마침내 일제강점기의 굴절된 왜색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청정 비구, 비구니만을 인정하는 전국비구승대회를 주관하여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역할을 맡으셨다.

1955년 8월 12일 13일 양일 간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서는 조계 혜능선사의 제자인 서당 지장선사에게서 심인을 받은 도의국사를 종조로 하고 고려의 태고보우 국사를 중흥조로 하고 이하 청허와 부휴의 양 법맥을 계승한 ‘대한불교 조계종’이 공식 출범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일제 불교정책의 부패상으로 환속승들이 신성불가침의 수도장인 사원을 가정화, 요정화 하여 귀중한 삼보정재를 개인생활로 낭비하고 전국 각처의 수도기관이 폐쇄되어 온 안타까운 한국불교의 현실을 청산하고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성과 정통을 계승한 명실상부한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청담대종사께서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 중앙종회의장을 거쳐 1966년에는 제 2대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셨다. 특히 청담대종사께서는 오늘의 조계종 승단 전통이념 체계를 세우는 대작불사로 불교정화운동의 선봉장 역할을 하셨다. 1968년 도선사를 호국참회의 수행근본도량으로 중창하시고 실달학원을 건립, 도제양성에 전력하셨으며, 1970년 광복절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고, 같은 해 10월 세게불교지도자 서울대회를 개최하여 한국불교의 위상을 세계 속에 선양하셨다.

청담대종사께서는 ‘성불을 한생 미루더라도 중생을 다 건지리라’는 원력과 ‘일체유심조’의 마음 법문으로 일생을 마감하셨다. 청담대종사의 장례식은 불교종단장으로 봉행되었는데 동국대 운동장에서 도선사에 이르는 운구행렬은 서울시민과 전 국민의 애도를 받았다. 이때가 조계종 총무원장 중임시인 1071년 11월 15일로 세수 70, 법랍 45세로 열반에 드시어 사리 8과를 남기셨다. 이러한 청담대종사의 도제양성의 유지를 받들어 상좌이자 도선사 주지이신 혜성대종사의 발원으로 용태학원의 팽성중학교를 인수하고 청담학원을 설립하였다.

1975년 11월 15일 청담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하여 초대 이사장에 혜성대종사님이, 초대 교장에 박남규 선생님이 취임하시어 자비무적, 정진불퇴, 지혜광명의 교조유시 아래 후학지도의 장을 열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정진한 스님은 성철스님과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며 수행가풍을 바로 세웠고, 역경, 도제 양성, 포교, 불교신문 창간, 군승제 도입, 신도 조직화,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등을 이끌며 종단의 토대를 구축하며 한국불교의 토대를 세우셨다.